<마태복음> 20장에, 예수가 천국을 비유하며서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느 농장 주인과 같다"는 말이 나온다.
이른 아침에 만난 일꾼을 포도밭으로 보내면서 하루 품삯을 1데나리우스로 정했다. 아홉 시쯤 장터로 가다 보니 서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도 포도밭으로 보냈다. 포도밭 주인은 정오와 오후 세 시경에도 그렇게 했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돼서도 거리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을 만났다.
"당신들은 왜 종일 하는 일 없이 이렇게 지내는 거요?"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요."
주인은 그들도 포도밭으로 가게 했다. 해가 저물 무렵 일이 끝났다. 맨 나중에 온 일꾼들부터 품삯을 지급하는데,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모두 1데나리우스씩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한 일꾼이 항의하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1데나리우스를 받기로 약속했으니, 당신의 몫이나 받아가시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돈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오."
포도밭 주인의 입을 빌려 예수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경제학, 또는 사회학적 의미로 이해하자면 노동권이 생존권으로 이행되어야 하는 이유를 암시한다. 누구든지 노동의 권리가 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보수는 생존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일을 적게 한 사람에게라도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임금은 일률적으로 지급해야 옳다는 말이다.
새벽부터 시작해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끝날 즈음 도착하여 겨우 한두 시간 일한 사람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일은 어찌 보면 불공평하고 부당하다.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늦게 구해 한두 시간밖에 일하지 못했다고 제대로 먹지도 못할 정도의 적은 임금을 받는 사태도 올바르지 못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겠는가? 많은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생존에 필요한 돈을 지급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 실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민주주의와 사유재산과 경쟁에 관한 서로 상반된 이해가 조금이라도 해결될 가능성이 보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의의 여신의 눈에 드리워진 누가리개를 벗겨 내는 것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두 눈을 크게 뜨고 함께 보아야 한다.
정의가 잘 보이지 않는다면, 부정의의 모습이라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만약 우리가 해낼 수 없다면, 로봇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은 편하겠지만, 로봇의 시녀가 되는 것 당연한 일이다.
- '상식의 힘 - 상식을 뒤엎을 줄 아는 상식' 본문 312p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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