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에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무려 세 명이나 본선에 올라 임동민, 동혁 형제가 2위 없는 공동 3위에 입상했다.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동혁은 조금 화가 난 듯했다. 그 전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던 그는 형과 공동으로 3위가 된 사실뿐만 아니라 자기가 1등을 차지하지 못한 결과에 불만이었다. 1등은 폴란드 청년 블레하츠 라파우에게 돌아갔고, 일부 네티즌들은 심사위원들의 부당한 차별 땝문에 한국의 임동혁이 1등을 배앗겼다고 흥분했다.
그 콩쿠르의 심사위원 중에는 서울대 강충모 교수도 들어 있었다. 누군가 강교수에게 "라파우에게 점수를 많이 주었나요?"라고 물었다. 강교수의 대답이 경청할 만하다.
점수를 많이 줄 수밖에 없었다. 월등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나머지 열한 명은 콩쿠르에 나와 승부를 가리는 듯했으나 라파우는 그냥 연주를 들려주고 간 것 같았다. 젊은 나이엔 감정에 치우질 수도 있는데, 라파우는 품위가 있고 소양을 갖춘 사람 같았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열한 명의 피아니스트와 한 명의 아티스트가 있다"고 평했다. 그런 발언은 다른 사람의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라고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다른 심사위원들 모두 그 한 명의 아티스트가 라파우란 걸 알고 있었다.
입상자는 심사위원들에게 찾아와 인사하는 게 콩쿠르의 관례인데, 라파우에게는 심사위원 전원이 먼저 가서 축하인사를 했다. 그는 몹시 수줍어했고, 그런 겸손한 면모가 연주에까지 배어 있는 듯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나서 모든 심사위원들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콩쿠르 결승장이란 느김을 가질 수 없었다. 피아노에만 치우치지 말고, 전반적으로 공부를 하며 인격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 점이 라파우와 다른 열한 명의 차이였다.
- '상식의 힘 - 대답 없는 질문' 본문 195p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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