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는 것도 가족이었지만, 아픔을 주는 것도 가족이었다. 늦은 밤, 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주 반병도 못 마시는 내가 청주를 여섯 병이나 마셨다. 화장실로 가는 계단에서 나는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달수가 나를 깨웠다. 달수가 나를 부축하려 했지만 괜찮다고, 나 혼자 갈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문을 열어주었다. 쓰러지듯 마루에 엎어졌다. 스무 살이 넘은 뒤로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울었다. 자신이 물려준 가난 때문에 자식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내 머리맡에 냉수 한 사발을 몰래 두고 나갔다.
모기는 사람의 피를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키고, 개구리는 모기를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킨다. 뱀은 개구리를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키고, 사람은 뱀을 먹으며 세계 평화를 지킨다. 평화는 평화를 통해 지켜지는 게 아니다. 빛이 어둠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어둠이 빛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평화는 우습게도 싸움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갈등과 충돌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때로는 가족들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 '눈물은 힘이 세다' 본문 58p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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