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랑스의 국가적 표상인 국기와 국가國歌는 프랑스 혁명 시기에 생겨났으나 국가의 영광을 위해 그것을 국가법으로 정한 것은 1백 년이 지난 뒤인 파리코뮌과 제3공화국에서였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국민국가가 국가적 표상을 창조하는 하나의 방법은 프랑스처럼 특정한 개인이나 지도자에 대한 숭배를 배제하고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보편적 상징을 창조하는 방향의 것이고, 다른 하나의 방법은 일본처럼 국가창설자의 숭배 이미지를 창조하고 이를 신화나 전통과 결부하여 신격화하는 방향의 것이다.
- '그리스 귀신 죽이기 - 신과 영웅, 지배자와 남성, 서양' 본문 245p 중에서 -
언제 들어도.. 언제 보아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여전히 나와는 거리가 있다.. 일단 이름부르기부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철학서적을 읽더라도.. 문학서적을 읽더라도 나는 동양 서적이 훨씬 쉽게 읽힌다.. 차라리 일본이름과 중국이름이 훨씬 잘 들어온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이 책은 그렇게 나와는 거리가 있는 그리스 신화, 아니 그리스 귀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 명료하다. 왜 그리스 신화를 읽어야 하는가? 왜 서양 중심주의에 의해서 씌여지고 서양에서조차도 조작되고 왜곡된 이야기가.. 그리고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서양에서조차도 열심히 읽히지 않는 상황에서 왜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읽어대고 있는가? 그렇게 읽고 있는 와중에 우리 또한 그런 서양중심주의 사고에 익숙해져서 우리만이 갖고 있는 좋은 관점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의 생각이 비록 대다수의 견해를 표방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일견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하나의 작품이 여러 시대에 걸쳐 서로 다른 위상을 갖기도 하고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사회를 살아내는 우리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가라고 물어볼 수 있겠다.. 과연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주체적이고 우리다운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 마땅하겠으나.. 어떤 것이 그런 생각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명확하게 이것이 그것이다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면... 네거티브 방식으로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아닌 것부터 골라내어 제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네가 많이 읽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효용성 내지 독서당위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여러가지 대답 중 하나가 이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내용이 주류의 견해가 아니기에 조금은 낯설고 불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세상의 질문에 대한 만고불변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본다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우리네 자신의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그런 위치를 차지해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책소개
더 이상 아름다운 그리스 신화는 없다 억압과 폭력으로 얼룩진 서구중심적 사유의 바탕인 그리스 신화의 이면을 파헤친다
그리스 신화는 한참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추천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며, 서양의 문화, 예술, 지명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어왔으며, 한참 신화의 붐이 열광적으로 일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신화는 여러 모로 유해하다."
저자는 그리스 신화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위만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우위와 함께, 외국에 대한 그리스의 우위를 내용으로 하기에 다분히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신화의 내용들은 침략과 지배, 전쟁과 정복, 약탈과 해적행위를 시적으로 미화했으며, 기본적으로 반민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정서를 담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괴물들은 주체로 등장하지 않고, 언제나 신이나 영웅의 토벌 대상으로 등장한다. 신이나 영웅은 항상 얼짱?몸짱에 선과 미를 대변하지만 괴물은 악과 추를 대변하는 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무서워한 외부세계의 자연과 외적과 미지의 세상, 그리고 내부세계의 적인 이단자와 여성을 포함한 피지배자들을 괴물로 표상하였다. 그리고 이같은 점으로 인해 우리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에 익숙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신화와 관련된 책에 비해서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그리스 신화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부정하는 측면까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를 바라보는 획일한 시선을 넘어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다른 신화 관련서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리스 신화가 지닌 이방을 타자화하는 서구중심적 사유가 어떻게 지금까지 지속되는가를 조명하기 때문에 서구중심적 사유의 오리엔탈리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속성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좁게는 신화를 비판적으로 읽게 하고, 보다 넓게는 현대세계의 평화적 질서를 흔드는 서구의 폭력성의 근간을 엿보게 해준다.
지금까지의 신화 해석에 반기를 든 파격적인 그리스 신화 독법
그리스 신화에서 주체인 자기는 신과 영웅들이고 객체인 타자는 괴물들이다. 주체인 자기는 지배자이고 남성이고 서양이고, 객체인 타자는 피지배자이고 여성이고 비서양이다. 즉 주체는 그리스, 타자는 비그리스다. 그 후 2천 년 이상 그리스를 정신적 지주로 삼은 서양은 비서양에 대해 대립과 정복, 경쟁과 폭력, 차별과 지배를 감행하는 역사의 주체로 나아갔다. 또한 그 괴물은 피지배자이자 여성으로서 계급차별, 성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피지배자나 여성도 괴물과 마찬가지로 사악하거나 음탕한 존재로 상정되어야 했다.… 타자에 대한 이러한 경멸과 차별 위에 선 주체의 지배, 억압, 배제, 착취, 파멸을 합리화한 것이 그리스 신화의 본질이고, 그것에서 비롯된 서양문화의 본질이다.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저자 박홍규의 거꾸로 뒤집어본 신화론이다.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 법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전부터 법학 이외의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 윌리엄 모리스, 베토벤, 루쉰 등의 평전을 통해 위대한 인간들의 풍성한 인간상을 드러냈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문화와 제국주의』,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와 같은 문제작을 번역하였다. 겉으로 보기에 지나치게 폭넓다 싶지만, 그의 작업들은 억압적인 서구중심성의 폭로와 해체, 그리고 그 너머를 제시한다. 그러한 그가 우리가 넋 놓고 읽었던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는 한참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추천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며, 서양의 문화, 예술, 지명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어왔으며, 한참 신화의 붐이 열광적으로 일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서양의 여러 것뿐만 아니라, 중요한 교양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생각되는데다 한국사회의 폭발적인 교육열까지 가세해 어린아이들에게 읽히는 만화로 된 그리스 신화가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처럼 중요시되고 널리 읽히는 그리스 신화가 여러모로 유해하다는 문제제기를 한다. 먼저 그리스 신화의 비윤리적 행태와 서구중심적 사유의 확산을 지적하는데, 결국 우리는 그리스 신화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서구적 방식으로 사유하게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그가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제기하는 바와 크게 맞닿아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수단이자 식민지 지배를 낳고 정당화하는 근원적 힘이다. 결국 인류의 유산이라는 미명 아래 읽히고 회자되는 그리스 신화가 오리엔탈리즘의 원조격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신화와 관련된 책에 비해서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그리스 신화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부정하는 측면까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를 바라보는 획일한 시선을 넘어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다른 신화 관련서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리스 신화가 지닌 이방을 타자화하는 서구중심적 사유가 어떻게 지금까지 지속되는가를 조명하기 때문에 서구중심적 사유의 오리엔탈리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속성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좁게는 신화를 비판적으로 읽게 하고, 보다 넓게는 현대세계의 평화적 질서를 흔드는 서구의 폭력성의 근간을 엿보게 해준다.
그리스 신화, 왜 위험한가?
그리스 신화가 원초적 본능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이라고 예찬하거나, 그것이 서양문화의 원류이기 때문에 서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사실은 그 신화가 음란이나 강간의 폭력주의만이 아니라 전제주의, 전체주의, 제국주의, 팽창주의, 침략주의, 귀족주의, 영웅주의, 군사주의, 물질주의, 권위주의, 속물주의, 성차별주의, 남성주의, 기계주의, 제도주의 따위를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 왜 문제인가?」 중에서
박홍규는 그리스 신화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위만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우위와 함께, 외국에 대한 그리스의 우위를 내용으로 하기에 다분히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신화의 내용들은 침략과 지배, 전쟁과 정복, 약탈과 해적행위를 시적으로 미화했으며, 기본적으로 반민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정서를 담았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괴물들은 주체로 등장하지 않고, 언제나 신이나 영웅의 토벌 대상으로 등장한다. 신이나 영웅은 항상 얼짱·몸짱에 선과 미를 대변하지만 괴물은 악과 추를 대변하는 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무서워한 외부세계의 자연과 외적과 미지의 세상, 그리고 내부세계의 적인 이단자와 여성을 포함한 피지배자들을 괴물로 표상하였다.
괴물과 대비되어 신화 속 영웅의 비중은 무척 큰데, 영웅은 반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어 타자화된 괴물을 무찌르는 존재다. 영웅은 신은 아니지만, 초인적 존재로 괴물들을 무찌르면서 높이 찬양되는데, 그 활동무대는 주로 외국이다. 저자는 외국의 괴물을 주로 무찌르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의 모습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이미지와 맞닿아 있으며, 그 폭압성과 무법성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그리스 신화 곳곳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여러 형태의 타자화는 기독교 문화를 비롯하여 서구사회의 억압성과 폭력성의 근간을 이루었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현대까지 확대 재생산된다.
이 책은 신, 영웅, 괴물의 삼층 차별구조에 따라 그리스 신화를 분석하였다. 아울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과 더불어 나타나는 동양에 대한 편견과 폄훼의 담론인 오리엔탈리즘은 이미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나타났다는 점을 누누이 밝히고자 했다. 신자유주의나 세계화라고 하는 현대세계의 경쟁과 폭력이 아닌, 화합과 평화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민족과 계급과 성별 간의 투쟁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평화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스 신화 혹은 그리스 귀신이 추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저자가 제기하는 이러한 추방은 단순히 그리스 신화를 안 읽거나 비판적으로 보자는 것을 넘어서서 폭력성과 억압성으로 점철된 서구중심적 사유를 넘어서는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스24 제공]
○ 저자 소개
저자 | 박홍규
박홍규는 법학자이지만 여러 예술가들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평전과 역서들을 출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1952년에 태어나 영남대학교와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또한 미국 하버드대학교, 영국 노팅엄대학교,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법학을 연구했으며, 일본 오사카대학교, 리츠메이칸대학교, 고베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창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척박한 이 시대에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평가되고 있는 저자는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인문 · 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영국의 진보적 사상가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를 조명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세계를 새롭게 해석한 『내 친구 빈센트』 그리고 풍자 만화의 아버지 오노레 도미에의 평전인 『오노레 도미에 - 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 고야를 반권력의 화신으로 본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루쉰의 사상과 문학 전체를 넓은 시야에서 조망한 『자유인 루쉰』, 자유 학교를 위한 순교자로 알려진 페레의 생애를 쓴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등이 있다. 또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등을 국내에 처음 번역 · 소개하기도 하였다.
[예스24 제공]
○ 목차
머리말|그리스 신화는 왜 위험한가?
1장|그리스 신화, 왜 문제인가? 1. 왜 그리스 ‘귀신’인가? 2. 그리스 신화의 문제점 3. 신화는 하등인가? 그리스 신화만 우등인가? 4. 그리스 신화는 위대한 독창인가? 5.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지리 6. 그리스 신화와 우리 7. 그리스 신화의 부활과 적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