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Books2009. 12. 4. 10:05
- 저자 : 진중권
- 출판사 : 휴머니스트
- 출간일 : 2009. 10. 04
- 분량 : 288p


○ HanbajoKhan

하지만 20세기의 회화는 외려 이 진화론적 사고를 뒤집어버리는 듯하다. 가령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년)의 <복숭아 맛 도텔>을 보자. 마치 초등학생이 화장실 벽에 그린 낙서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 작품은 카로토의 아이가 그린 그림과 너무나 유사하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도대체 어느 게 어른의 그림이고, 어느 게 아이의 그림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렇게 일부러 아동화의 스타일을 택하는 것은 뒤뷔페만이 아니라, 피카소나 칸딘스키, 호아 미로 등 많은 현대 화가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들은 왜 진화의 방향을 거슬러 자꾸 유년기의 화풍으로 되돌아가는걸까?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 1959~1905년)에 따르면, 미술사를 움직이는 것은 '능력(Konnen)'이 아니라 '의지(Wollen)'라고 한다. 현대 화가들이 유년기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적 묘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다만 그럴 '의지'가 없을 뿐이다. 미술사를 사실적 재현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으로 볼 때, 아이들의 그림은 채 발달하지 못한 미숙함의 산물일 뿐이다. 하지만 미술사를 상이한 '의지들'이 교차하는 장으로 바라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경우 아이의 그림은 마치 어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현대의 화가들이 아이들의 그림에 주목하는 것으 그 때문이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실물을 꼭 빼닮게 그리는 기술은 완성에 도달했다. 거기에 19세기에 카메라까지 발명되면서, 도처에서 사물을 꼭 빼닮는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실물을 빼닮은 이미지에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않는다. 이는 화가들에게 커다란 위기를 의미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시작하려면 역시 근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현대의 화가들은 사회화를 겪지 않은 어린이, 문명화를 거치지 않은 미개인의 그림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서 그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관행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예술의지'를 찾았던 것이다.

- '교수대 위의 까치 - 누구든지 저와 같지 않다면' 본문 128p 중에서 -

개인적으로 진중권 교수의 책은 웬만하면 구매하고자 하는 편이다..
취향이 그쪽이라서 그런가?
저자의 책은 아직까지는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그래서 '폭력과 상스러움'으로 시작된 저자와의 만남은 현재까지는 아주 즐거운 편이다..
그리고 저자가 표방하는 생각들이 나와 맞는 것 같기도 한 것 같아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저자의 주 분야인 미학관련 분야는 내 관심 분야가 아니었기에 그닥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면서.. 미학, 미술, 작품감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기게 된 것 또한 또하나의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문학작품이든 미술작품이든 작품해석이야 있기 마련이지만.. 그 해석이 정답일 필요는 없을 것이며.. 정답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작가의 손을 떠나 세상에 나온 작품은 그것을 읽어내고 보는 이들에 의해 재해석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런 관점으로 작품을 접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단서들과 역사적 상황들을 알려주고 작품을 보다 맛나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방법이 정답이라는 보장도 없고.. 정답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Hanbajo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