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기2009. 11. 9. 12:36
“자신이 직장에서 일할 때 무엇에 의해 동기를 부여 받는지 중요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주세요.”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trategic Human ResourceManagement) 시간, 교수는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하나씩 나눠줬다. 설문지에는 배움, 기술 습득, 좋은느낌, 급여 수준, 일의 가치, 주변의 칭찬, 사원복지 혜택, 고용안정이 쓰여 있었다. 설문지를 거둬간 교수는 같은 설문지를 다시 한 장 나눠줬다. “이번에는 여러분의 직장 동료들이 무엇에 의해 동기를 부여 받는지 중요한 순서대로 써주세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학생들은자신 스스로에게는 ‘배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에게는 ‘급여 수준’이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을 내놓았다. 놀랍게도 이 결과는 시티뱅크와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 MBA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와 같았다. 다른 조사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은 배움, 기술 습득, 좋은 느낌 등을 상위에 올려 놓으면서도남들에게는 예외 없이 모두 ‘급여수준’을 1위에 올려 놓았던 것이다. 왜 다들 스스로는 일터에서도 고상한 가치들을 생각하면서 남들은 돈만을 생각한다고 여기고있는 것일까?

미국 자본주의를 이끌어간다는 MBA와 투자은행가들의 의식이 이렇다 보니 수많은 대기업들이 성과보수체계를 설계하고 바꾸는 데 끊임없이 엄청난액수의 돈을 쏟아붓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남들은 급여에 따라 행동을 달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수십 년 동안 경영 현장을 지배했다. 개인별 성과급체계나 아웃소싱 등 이 과정을 거쳐 나온 인사관리 원칙은 이제 상식이 됐다.

일면 합리적이기도 하다. 임금은중요하다. 임금은 기업과 임직원이 맺는 관계를 함축적으로 요약해준다.임금은 그 액수를 측정하기 쉬우므로, 사람들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여러 가지 통계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임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통념이 나돈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하고 있는, 임금이 사람이 일하는 사실상 유일한동기라는 통념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통념은 여러 가지 이론으로 지지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임금이 사람이 일하는 유일한 동기일까? 현실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 점을 정확하고인식하고 성공으로 연결시킨 기업들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SAS와 아메리칸 어패럴이다.


성과급 없이 고속성장하는 회사

한 첨단 소프트웨어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이 속한 업종에서는 프로그래머 스카우트 전쟁이 극심해서 채용 때 거액의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지급하는게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 기업에는 그 흔한 임직원 스톡옵션도 성과에 따른 주식 지급도 없다. 심지어 개인별 보너스를 지급하지도 않는다. 영업부서 직원들조차도성과급 없이 정해진 기본급을 받아간다. 그런데 이 기업은 창립 이후21년 동안 연평균 25% 이상 성장했다. 믿을수 있겠는가? 통계처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SAS가 바로그 기업이다.

그런데 SAS는 이 모든 노력과 투자를 비웃었다. “개인별 성과급을 줘야 인재를 모을 수 있다”는 상식을 이 회사는 철저히 무시했다.SAS는 비상장 업체로는 미국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짐 굿나이트 SAS 창립자 겸회장은 1976년 창사 때부터 ‘공정성’과 ‘형평성’을 회사 이념으로내걸었다. SAS는 직원들에게 개인 성과에 따른 보너스도 스톡옵션도 주지 않는다. “돈으로 일을 더 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게기본 원칙이었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거액의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내걸어 실리콘 밸리에 엔지니어의 대이동이 벌어지던1999~2000년의 IT업계 대호황기에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그러면서도 최고의 인재를 뽑아 키우면서 창사 이래 20년 이상평균 25% 성장이라는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SAS는 대신 가족 친화적인 환경과 각종 교육 기회 및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노동 시간은일주일 35시간으로 엄격하게 지켜졌다. 회사 정원에는 아름다운 호수를 낀 조각공원과 바비큐 파티를 벌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있어서, 사원들은 주말에 가족들을 데리고 이 곳에서 무료로 피크닉을 즐길 수 있었다.회사는 간호사 5명, 의사 2명, 물리치료사, 상담사등을 고용해 무료진료도 해줬다. 교사 1인당 3명의 아이만을 맡는 몬테소리 유아원과 유치원도 갖춰져 있었다. 몇년 전에는 상당금액의 장학금 혜택을 갖춘 중고등학교도 문을 열었다. 세탁 서비스가 갖춰진 체육관과 운동기구들역시 종업원과 가족들에게 모두 무료로 제공됐다.

해외 지사들도 마찬가지 수준의 혜택을 제공했다. 프랑스 지사는 파리 근교의 아름다운 성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영국지사는 템즈 강변 대형 저택의 자태를 자랑했고, 독일 지사는 맥주홀과 호텔을 끼고 있었다. SAS는 입양에 대해 자금지원 및유급휴가를 지급한 최초의 회사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근무시간은 유연해서 종업원 스스로 출퇴근시간을 정할 수 있었고,자녀들에게는대학 입학 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러니 1998년 경제잡지 <포츈>이 선정한 ‘일하고싶은 기업’ 3위에 오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SAS가 얻은 것은 낮은 이직률이었다. 동종업계 연 이직률 평균이 20%일 때, SAS는 4%도되지 않는 이직률을 자랑했다. 경영진의 인사관리 목표 자체가 ‘노동비용최소화’가 아니라 ‘이직률 줄이기’였다. 이유는 SAS의사업 모델에 있었다. SAS는 통계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기업에 판 뒤,끊임없이 유료 업데이트를 통해 돈을 버는 수익모델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소프트웨어 개발보다는사후 서비스와 고객 기업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낮은 이직률로SAS에는 소프트웨어를 더 잘 이해하는 경험많은 엔지니어들이 늘어났다. 이는 질 좋은 사후서비스와 고객들의 신뢰로 이어졌고, 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노동착취 없는 티셔츠, 시장을 제패하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구호를 내걸고 미국티셔츠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아메리칸 어패럴도 임금에 대한 또 다른 신화를 공격하고 있다. “노동비용을줄이면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상식을 뒤집은 것이다.미국 로스엔젤스에 있는 이 기업은 1997년 창립 때부터 ‘노동착취 없는 옷’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모든 공정을 미국에서 진행했다. 나이키 등 다국적 의류업체들이 이미 임금 절감을 위해 아시아로 생산을 완전히 옮긴 뒤였다.

아메리칸 어패럴은 시간당 평균임금 12.5달러(1만2500원)를 지급하고 있다. 다국적의류업체들이 아시아 저개발국가 공장에서지급하는 임금보다 5~10배 가량 높은 액수다. 그러나 CEO 도브 챠니는 그렇다고 해서 생산 비용까지 그만큼 차이가 나는 건아니라고 외쳤다. “생산비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여기다 시간당 12.5달러(1만2500원)를받으며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시간당 1달러(1천원)를 받으며더러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생산성이 월등히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저개발국가에서 미국까지 도로실어오는 물류비용까지 합치면 셔츠 한 벌당 생산비용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의 말이사실이든 아니든, 이 기업이 창립 9년째인 2005년 2억5천만 달러(약 2500억원)의 매출을올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드러내 놓고 높은 임금을 지불하면서도 시장의 승부에서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임금에 대한 여섯가지 신화

스탠포드대학 비즈니스스쿨의 제프리 페퍼교수는 “임금에 대한 여섯가지 위험한 신화”라는 글에서 ‘임금을 통한 관리’에 대한 맹신에 따라 나타나는 여섯 가지 잘못된상식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첫째, 임금과노동 비용은 같다는 신화다. 임금은 시간당 지불하는 금액으로 계산되지만, 노동 비용은 생산 단위당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 신화에는 생산성이노동 비용 결정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둘째, 임금을깎아서 노동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신화다. 임금이 낮아지더라도 생산성이 따라서 떨어진다면 노동비용은줄지 않는다.

셋째, 노동비용은총 생산비용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는 신화다. 아메리칸 어패럴이 증명했듯이, 컨설팅이나 투자은행 같은 전문 서비스 기업이 아닌 이상 이는 진실이 아니다.예를 들어 청바지의 경우 노동 비용은 전체 비용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노동비용감축은 아주 유효한 경쟁전략이라는 신화다. 노동비용 감축은 누구나 복제할 수 있는 전략이다. 그러니 전략 가운데서도 가치가 매우 낮다. 고객 관계 개선이나 제품질 향상과 같은 경쟁전략보다 훨씬 낮다.

다섯째,개인별 성과급 체계는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신화다. 이는 협동이 필요 없는 업종에서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돈을 위해 일한다는큰 신화가 있다. 주류 경제학의 기본 가정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신화다.특히 피하기 어려운 신화다.

그러나 현실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보면, 기업과 사람이 맺는 관계는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다. 임금은 기업과사람 사이의 수많은 접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MBA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임금만이 일의 동기라는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않다.


by 이원재(트위터 wonjae_lee, 한겨레경제연구소 홈페이지 www.heri.kr)

* 졸저 'MIT MBA 강의노트'의 일부입니다.
* '단행본 공개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출처 : 착한 경제 미래 경제의 코드(
이원재(lasttime) 한겨레경제연구소(HERI)]
[
http://blog.hani.co.kr/goodeconomy/26861]
Posted by Hanbajo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