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기2011. 3. 17. 09:30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라고 믿는 사람은 순진한 사람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우리 마음에 큰 위로를 주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보는 것이다. 우리는 싸구려 소파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노래방에서 술 냄새가 배어 있는 마이크를 붙잡고,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며 목 놓아 소릴 지른다. 모름지기 대중가요란 일반 대중의 고단한 현실을 위로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 고단한 현실을 타개할 만한 대안을 제시해주진 못한다. 대중을 위한 베스트셀러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에 빌딩을 가진 우리나라의 어떤 부자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그렇게 정말 ‘무소유’로 산 적이 있었던가? 그저 아침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과 몸을 부대껴야 하는 이 땅의 평범한 이웃들이, 그 책을 읽으며 자신의 무소유를 위로해왔을 뿐. 이 사실을 통감하시던 법정 스님께서 스스로 ‘말빚’을 남기지 않겠다고 작심하시어 유언으로 그 책의 절판을 선언하신 것은 아닐까?
 
모름지기 지금 흐린 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무작정 새날이 오고, 쨍하고 해가 뜰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사람, 한 번의 뼈저린 실패로 뒤로 물러서야 했던 사람은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면서 사회부연(死灰復燃, 사그라진 재에서 불이 다시 살아남)과 권토중래(捲土重來, 한번 패배한 사람이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재기함)를 노려야 한다. 사노라면 흐린 날을 한숨 속에 보내야 하는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설움과 절망의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실패의 뼈저린 아픔 속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절망의 순간을 견뎌내야 할 것인가? 무엇을 도모하면서 그 설움을 견뎌야 할까? 메디치 가문은 우리에게 설움과 절망의 위기를 극복하는 법을 알려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75 호 (2011.02.15) / 김상근]  '좌절금지! 망한 가문의 추기경, 교황이 되다' 중에서 발췌 


"서울 강남에 빌딩을 가진 우리나라의 어떤 부자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그렇게 정말 ‘무소유’로 산 적이 있었던가? 그저 아침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과 몸을 부대껴야 하는 이 땅의 평범한 이웃들이, 그 책을 읽으며 자신의 무소유를 위로해왔을 뿐."
오늘따라 이 문구가 왜 이리 절절하게 느껴질까?

Posted by Hanbajo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