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 점심시간 마침내 침묵의 계율이 풀렸다. 그 동안 아무도 침묵을 갑갑해하거나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았건만 혀가 풀리자 식당 안은 마치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포옹했다. 그건 말이 아니라 침묵이 터뜨린 폭죽이었다. 침묵이 피워낸 꽃이었다. 백화난만한 꽃밭. 침묵은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만약 갇혀 있었다면 결코 그런 해방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 본문 중 '그리운 침묵' 94p -
- 본문 중 '그리운 침묵' 94p -
철없이 한바탕 웃고 나서 이내 숙연해졌다. 어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저승길 가기가 아마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홀연 호뱅이가 떡판처럼 든든한 등을 빌려주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니었을까. 착한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한다는 미카엘 천사처럼.
호뱅이한테 업혀서라면 어머니를 안심하고 떠나보내도 될 것 같았다. 호뱅이가 하늘나라 주민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 본문 중 '엄마의 마지막 유머' 232p -
아주 짧은 통화였습니다. 선생은 상 받게 되어 고맙다고 했고 나는 기쁘게 받아줘서 고맙다고 했던가요. 그뿐이었지만 그간 서로 견디어온 것을 비긴 것처럼 개운해졌습니다.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부모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 본문 중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 256p -
박완서님의 '호미'라는 책에서...
몇몇 가슴에 남았었던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