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은 강연이 끝난 후 젊은 엄마가 다가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섯 살배기 딸이 있는데 학교에 가기 전 아침마다 배가 아프고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해요. 학교에 들어간 첫해에는 이런 증상이 전혀 없었고 매일 신이 나서 학교에 갔거든요."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덧붙였다.
"첫해에는 아주 좋은 선생님을 만났었어요."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올해의 선생님은 어떤가요?"
"아주 비판적이고 까다롭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잘 지른다는 평이 있더군요."
나는 도다시 물었다.
"아이가 학교에 갈 때마다 두려움 때문에 아픈 증상을 보이는 것인데 어떻게 할 겁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많은 부모들이 불평을 하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도 내년에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겠지요."
나는 내년이 되면 아이가 학교에 완전히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년이 되어도 학교가 안전한 곳이라고 믿게해 줄 만큼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나는 아이 엄마에게 교장을 만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며,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학교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히라고 조언했다. 또한 그 문제를 교육부에도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교사의 지위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정서적 문제가 다른 사람의 존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교사의 경우는 학교 측의 개입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를 방관하는 것은 학교가 문제를 해결하는 면에서 잘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 '나를 찾는 셀프심리학 - 자아를 그늘지게 하는 문화' 본문 74p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