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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적 관점에서 죽음은 나쁜 것인가?

from Extraction 2008/07/22 23:08



유물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 인간의 탄생은 어떤 정신적 필연성이나 의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물리적, 화학적 인과 과정의 결과다. 즉 물리적, 화학적 과정으로 환원될 수 있는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종이 만들어졌고, 부모 세대의 어떤 정자와 난자가 물리적, 생리학적 요인들에 의해 결합한 수정란이 발생한 것이 바로 새로운 인간 개체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정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한 특정한 개인의 탄생은 어떤 이유를 갖고 있는 필연적인 것이라기보다 순전히 우연적인 것이며, 그것도 매우 있기 힘든 우연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다. 한 사람의 탄생을 그 부모에서부터만 따져보자. 평균적으로 아버지는 한 번 사정에 2억 마리 정도의 정자를 배출한다. 이 수를 아버지의 평생 사정 횟수와 곱해보면 아버지가 평생 배출하는 정자 수가 나온다. 즉 아버지의 사정 횟수를 500회 정도로 잡으면 아버지가 평생 배출하는 정자 수는 1,000억 마리쯤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경우 어머니가 평생 배출하는 난자 수는 500에서 600개 정도라 한다. 계산의 편의상 이를 500개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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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결합할 때 이 중 어느 한 쪽만 다른 것으로 바뀌어도 그 수정란에서는 다른 인간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인간의 종류는 500*1,000억=50조에 이른다. 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인간의 종류는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모든 인간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은 것이다.

이렇게 50조에 이르는 가능한 인간들 중에서 실제로 탄생한 것이 나와 내 동생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50조의 가능한 인간들 중에서 유독 우리 둘이 탄생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유물론적으로 보았을 때 그런 이유는 없다. 다만 정자가 배출되어 난자까지의 이동시 물리/화학적 조건과 우연에 의해 특정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결과 나와 내 동생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즉 나와 내 동생은 이 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다만 부모로부터만 따져도 약 25조분의 1의 확률로 우연히 태어난 것이다. 우리들은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본질에 비추어보았을 때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은 무엇인가? 위에서 살펴본 나의 우연한 탄생 과정을 되새겨보았을 때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이란 것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굳이 마땅한 삶을 규정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 몫을 0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실제 삶을 이 '마땅하게 누려야 할 삶'과 비교한다면 나의 삶은 모두 일종의 덤이며 나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물이었음이 판명된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은 본래 내 것이거나 당연히 내가 누려야 할 무엇을 나에게서 빼앗아가는 거싱 아니라 다만 선물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죽음을 나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 '떠남 혹은 없어짐' 본문 96p 중에서 -

HanbajoKhan
2008/07/22 23:08 2008/07/22 23:08
Tag // 떠남혹은없어짐, 유물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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