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의 한 재개발아파트 단지에서 경비로 일하는 50대의 전씨는 아파트 재개발 전에는 달동네에서 벽돌공으로 일하면서 집을 한 채 소유했다. 1980년 재개발조합이 결성되었을 때 조합원으로 가입해 38평 아파트를 분양받을 권리를 얻었다. 공사 중에 15평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건설사가 지원한 이주비용과 저금, 친지한테 빌린 돈을 합쳐 전세금 4,000만원을 치렀다. 아파트 잔금도 빌려서 해결했다.
1993년 아파트가 완공되자, 그것을 젊은 부부한테 7,500만원에 전세를 주었다. 그것으로 빌린 돈을 갚은 그는 그곳 경비로 취직했다. 전씨는 "운이 좋아"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그곳에 거주하지 못한 채 더도 덜도 아닌 '하인 신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파트값은 엄청 뛰어올라 매우 만족스럽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무엇인가?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은 경제적인 수혜이고 이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는 통로다. 아파트는 돈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그로써 부를 창출하는 공간이다.
전씨는 그런 아파트 소유자이면서도 돈이 달려 그곳에 들어가서 살지 못한다. 그는 아파트 소유자이면서도 아파트 경비원으로 전락해 있다. 하지만 그는 아파트 소유자로 돈을 벌어 즐겁다.
도대체 전씨와 아파트라는 기호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어렵기 짝이 없다. 그러나 '초과실재'와 '기호의 소비'를 들이대면 금방 답이 나온다. 그는 아파트를 소유해 살면서 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게 아니라 아파트의 이미지를 사고, 아니, 가짜 이미지를 사고 또 그 이미지에 눌려 하인 신세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아파트라는 허상을 좇다가 그것을 실상으로 착각하고 그러다 그 허상에 억눌려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다. 참으로 아타까운 일이다. 묘한 상실감이 밀려온다.
- '낭만아파트 - 님은 먼 곳에' 본문 263p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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