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휴리스틱의 또 다른 예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경우도 전혀 교훈적이지 않다.
"당신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 있는 심각한 병에 걸렸다. 이제까지 사용한 치료제는 치사율을 0.0006퍼센트로 낮춰놓았는데, 치료비는 185유로다. 제약 회사는 치사율을 0.0003퍼센트로 낮출 수 있는 더 효과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려 하고 있다."
당신은 이 신약에 돈을 쓸 용의가 있는가? 이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생각해보라.
"신약은 100만 명 중 600명이 사망할 확률 300명까지 낮춰준다."
이 신약에 돈을 쓸 용의가 있는가?
두 가지 질문은 사실 내용적으로는 동일하다. 100만 명 중 600명은 0.0006퍼센트이고, 100만 명 중 300명은 0.0003퍼센트다. 두 경우 모두 위험이 반으로 줄어들었고 그러므로 똑같은 액수의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첫 번째 경우에는 평균 213유로를 지불할 용의가 있었고, 두 번째 경우에는 362유로를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믿든 안 믿든 이것은 실험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 사실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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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은 대략 이렇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먼제 제시되었다. "베르디와 유사한 환자들이 퇴원 후 6개월 이내에 폭력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20퍼센트라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두번째 그룹은, 똑같은 정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제시된 정보를 토대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베르디와 유사한 환자들 100명 중 20명이 퇴원 후 6개월 이내에 폭력적 행동을 한다는 게 관찰되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처음 그룹에서는 전문가 21퍼센트가 퇴원에 반대했다. 두 번째 경우에서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41퍼센트가 반대했다. 전문가이든 아니든 감정들이 장난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왜곡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납득할 만한 설명은 퍼센트로 표현된 정보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아서 베르디와 연결된 위험의 대표성을 중립적인 것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반면 빈도로 표현된 정보(100명 중 20명)는 전달되는 즉시 한 개인이 현실 세계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불안한 광경들을 상기시켰다. '100명 중 20명'이나 '열 명 중 두 명'이라는 표현이 그런 장면과 관련된 감정을 불러온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진짜 폭력적인 사람을 그려보는 것 같다. 그러니까 베르디라는 가상의 인물을 병원에서 퇴원시키는 데 따를 똑같은 위험을 묘사했지만 전혀 다른 두 가지 감정을 유발시켰고, 이 감정이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쳐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 전문가들만이 이와 비슷한 실수를 범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 모두, 스스로의 문제를 결정할 때에도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똑같은 위험을 전혀 다르게 제시하면 대개 감정적으로 강하게 반응하게 되고 이것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제시는, 그것이 환기시키는 현실과 관계가 밀접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로 인한 감정이입이 크면 클수록 더 효과적이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존재가 되겠지만, 우리의 피부에 닿는 것을 지각할 때에는 우리 머리에서 경계의, 종이 울릴 확률이 낮다는 것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위험 대신 기회의 영역에서도 똑같은 매커니즘이 작용한다.
당신이 슈퍼마켓에 갔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두 개 구입 시 한 개 추가'라는 표시가 한쪽에 붙어 있는 참치 캔과 똑같은 비율로 할인해준다는 표시가 붙어 있는 참치 캔이 나란히 놓여 있을 때, 그 앞에서의 행동을 저울질해보라. 감정적으로 보면 분명 두 번째 경우는 첫 번째 경우보다 그다지 이득이 커 보이지 않는다. 첫 번째 경우는 벌써부터 '무상으로 얻은' 캔의 무게를 주머니에서 느끼게 된다.
- '이코노믹 마인드 - 숫자와 비율의 속임수' 본문 111p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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