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여기가 마음에 드시나요? - 삶이 원하는 곳에 삶을 풀어놓는 것에 관하여' 본문 20p 중에서 -
문제를 하나 내겠다. 만약 당신이 수영선수가 되고 싶다면 어디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야 할까? 그렇다. 물속이다. 그럼 다시 하나만 묻겠다. 만약 당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디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까? 그렇다, 행복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붓는다. 간혹 기쁜 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즐거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마치 그것은 '아주 잠깐만' 맛봐야 하는 것이라고 규율로 정해진 듯하다. 그것은 수영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복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해지겠는가? 설마 인생 최고의 가치, 행복이 연습 없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중략)
"고민하느라고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잤어."라는 말은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즐거워하느라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했어."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쁨'역에는 아주 잠깐 들어 물 한 병만 사들고는, 허겁지겁 '고민'역에 당도해 호텔을 잡고 오래 오래 머무는 것이 우리 감정의 여행법이다.
즐거운 일, 기쁜 감정이 일어났을 때 그 감정에 되도록 오래 집중하여 머물라. 같은 열차에 탄 사람들이 "뭐 해? 갈 길이 먼데, 왜 거기서 우물쭈물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올라 타(익숙한 고민 역에 가서 쉬자)!"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 때 유유히 손을 흔들어주어라. "미안하지만 난 여기 좀 더 머물기로 했어."라고. 그들과의 여행은 그만 끝내라.
- '기분이 좋으신가요? - 무엇이라도 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본문 60p 중에서 -
1997년 미국의 오클라호마에서 했던 연주회가 기억에 남는다. 그곳은 날 때부터 전혀 들을 수 없는 선천적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그들은 '소리'라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대문에 종종 난폭하게 문을 여닫거나 고막을 찌르는 괴성을 지르곤 한다. 그들의 스트레스와 폭력성을 완화시키기 위한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나를 초청했던 것인데, 그것은 연주자인 나로서도, 주최측으로서도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연주를 시작하기 위해 들어섰을 때, 강당에 모인 청중들은 철제 의자를 시멘트 바닥에 글며 불협화음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었다. 끼익, 끼이익! 끊임없이 신경을 긁어대는 금속성의 소리. 음파에 민감한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구원을 요청하듯 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소음 속에 묻혀 그 소리는 돌을 끌어안고 있는 내게조차 들리지 않았다.
싱잉스톤의 노랫소리가 이윽고 공기 속에 선명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은 연주를 시작한 지 5분 남짓 지나서였다. 청각 장애인들이 하나둘 의자 끌기를 그만두고 돌이 내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보드라운 가랑비를 맞듯이 두 팔을 벌리고 서서 그윽한 표정으로 듣는 사람, 그 야릇한 진동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의아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사람, 태아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 그들이 내게 말해주었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님을. 온 몸의 모공으로, 솜털로, 체액의 떨림으로 감지하는 것임을.
- '식사는 잘 하셨나요? - 먹는다는 것, 몸을 관통하는 모든 것들에 관하여' 본문 94p 중에서-
['인생에 대한 예의' 본문 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