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는 달리 나의 탄생이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의 뜻이나 업과 같은 어떤 필연성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역시 나에게 어떤 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권리 없이 태어난 나이므로 영원히 죽지 않거나 오래 살 권리 역시 있다고 보기 힘든 것입니다.
물론 나를 있게 한 필연성이 나에게 삶을 누릴 권리를 부여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더라도 그 권리는 우리가 죽음을 맞을 때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업이나 신의 뜻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내가 어느 때에 죽게 되는 것 역시 같은 필연성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필연성이 우리에게 삶의 권리를 부여했듯이 우리가 죽을 때 그 권리도 가져가는 것으로 보아야 합리적일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의 입장에서 보든지 유물론의 입장에서 보든지 우리에게 영원히 살거나 실제 수명보다 더 살 권리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어느 때 찾아오든 그 죽음이 '삶에 대한 나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지요.
- '살아 있는 날의 선택 - 권리 밖에 놓인 삶' 본문 34p 중에서 -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그렇듯이 의학에서도 인간의 힘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은 자연현상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런 만큼 인간이 죽음을 통제할 수 있는 정도는 더 떨어지는 것이지요. 다른 분야에서 길들여야 하는 자연이 야생마 정도라면 의학에서 길들이려고 하는 죽음은 포악하기 짝이 없는 육식공룡쯤 될 것입니다. 의학은 잘 해야 죽음을 얼마간 지연시킬 수 있을 뿐 결국 막아내지는 못합니다. "병상에서 이룬 승리는 아무리 크다 해도 종말로 가는 길목에서 행진이 잠시 미뤄진 상태"일 뿐이죠.
의학의 힘을 과대평가하게 되면 불가항력인 죽음에 대해서도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맞서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는 이런 노력 때문에 환자의 마지막 날들은 수많은 검사와 시술, 그에 따르는 고통과 번잡함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환자는 가족들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이 세상을 뜨게 되는 것이죠.
죽음이 자연현상이라고 해서 그것에 순응해야 할 도덕적 당위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죽음은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불가항력이라는 것이죠. 불가항력인 것에 대해서는 부질없이 맞서는 것보다 이를 인정하고 순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러할 때 죽어가는 내내 가망 없는 싸움을 하느라 지치고 고통받고 절망하는 일도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 '살아 있는 날의 선택 - 떠남의 까닭' 본문 48p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