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악의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선의를 통해서이지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다. 악은 오류가 아니라 결핍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악은 대상과 잘못 맺은 관계라기보다는 그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악의를 굴복시키려면 단순히 생각만 많이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바로잡는 것이 아닌,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악한 자는 자신의 존재를 상실한 존재이다. 실제로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길 바라고,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존재하길 원하다 보니, 아주 약삭빠르기만 한 종자가 되고 만 것이다. 악한 자의 비극은 바로 그 점에 있다. 약삭빠를수록 악해지고, 악해질수록 약삭빠르게 굴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그러한 체계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치유책밖에 없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저 혼자 가게 내버려두고, 존재하는 것이다. 무얼 앞서 점치려 하지도 말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려고도 않으면서 말이다.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는 『미덕과 사랑』에서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열쇠를 쥔 자는 영혼이 단순한 자이다. 이중성을 지닌 괴물을 퇴치할 수 있는 자는 자기 자신과의 합일을 이룬 존재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알료샤 카라마조프 같은 인간형이나, 『백치』의 줄거리를 수놓는 단순한 행동, 단순한 영혼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이 단순한 이들은 행복할까? 그 말이 곧 정신속에서 단순함을 잃지 않고, 특히 단순성의 정신을 갖춘 이를 의미한다면, 그렇다.
선의와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마음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치들로 움직인다. 약삭빠르길 바라는 것이 항상 약삭빠른 것만은 아니다. 약삭빠르다 보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반면 온 마음을 바쳐 사는 것은 삶의 한결같은 토대를 이룬다. 자기 자신과의 이러한 합일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인 내면의 무질서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 '슬픈 날들의 철학 - 마음에 관하여' 본문 271p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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