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음을 혐오하고 거부한다. 그러나 세포는 죽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죽음을 거부하는 것은 문명에 훈육된 우리의 의식이다. 문명한 세계에서는 죽음이 부자연스러운 것, 더러운 것, 나쁜 것이라고 낙인 찍힌다. 뜻하지 않게 문명에게서 나쁜 평판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 최종 목적지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문명의 훈육으로 왜곡된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직관을 강화하고 고양할 때, 삶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노화와 질병, 죽음에 대해 필요 이상의 공포감은 죽음을 죽음으로 바로 응시하지 못하게 하며, 실존의 불가피한 사건인 죽음을 실제보다 기이한 것으로 바라보게 한다.
오랫동안 질병과 싸우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한 외과의사 스펜서 내들러는 이렇게 말한다; "'노화'라는 말은 죽어간다는 것의 완곡어법이다. 우리 몸의 쇠락이, 지극히 시각적이고 지각 가능한 방식으로 어떻게 우리의 몸이 종언을 고하기 시작하는지를 가르쳐준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가르침을 부인하려 든다.우리는 외모를 가꾸는 데 해마다 수십억 달러의 돈을 쓴다. 희끗희끗 세어가는 머리를 염색하고, 벗겨지는 머리를 가발로 장식하며, 주름의 골을 채우고, 얼굴 피부를 끌어당기며, 지방을 흡입한다. 몸의 쇠퇴가 직접적으로 삶을 위협하기 전까지 줄곧 우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노화의 가시적인 유언을 화학적 혹은 외과적으로 바꾸면서 결코 죽음을 응시하지 못한다.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겉치장에 몰두하는 것은, 죽음을 실제보다 더 기이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극도의 고통과 굴욕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음을 신화의 장막 속에 감추는 일이다."
- '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고통' 본문 54p 중에서 -
오랫동안 질병과 싸우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한 외과의사 스펜서 내들러는 이렇게 말한다; "'노화'라는 말은 죽어간다는 것의 완곡어법이다. 우리 몸의 쇠락이, 지극히 시각적이고 지각 가능한 방식으로 어떻게 우리의 몸이 종언을 고하기 시작하는지를 가르쳐준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가르침을 부인하려 든다.우리는 외모를 가꾸는 데 해마다 수십억 달러의 돈을 쓴다. 희끗희끗 세어가는 머리를 염색하고, 벗겨지는 머리를 가발로 장식하며, 주름의 골을 채우고, 얼굴 피부를 끌어당기며, 지방을 흡입한다. 몸의 쇠퇴가 직접적으로 삶을 위협하기 전까지 줄곧 우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노화의 가시적인 유언을 화학적 혹은 외과적으로 바꾸면서 결코 죽음을 응시하지 못한다.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겉치장에 몰두하는 것은, 죽음을 실제보다 더 기이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극도의 고통과 굴욕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음을 신화의 장막 속에 감추는 일이다."
- '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고통' 본문 54p 중에서 -
